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문단 편집) === [[토론토 랩터스]] === [[파일:external/johnchidleyhill.com/tmac_kings.jpg]] 맥그레이디는 97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9순위로 토론토에 지명을 받게 된다. 팬들과 전문가들은 당시 팀의 GM이었던 아이재이야 토마스의 선택에 관심을 드러냈는데, 토마스는 인터뷰에서 "아직 맥그레이디는 모든것이 부족하지만 몇년후에는 엄청난 선수로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하지만 루키시즌에 그는 많은 출전시간을 받지 못했다. 솔직히 아무리 고등학교에서 날라다니는 선수였다고 해도, 프로는 엄연히 무대가 달랐고, 당시 팀의 백코트 주전중 하나인 덕 크리스티가 잘해주었기 때문에 맥그레이디를 굳이 종용할 이유는 없어보였다. 맥그레이디는 뛰지 못한다는 생각에 오죽했으면, "농구가 재미없다."라고 발언했을 정도. 그러나 당시 팀 감독이었던 다렐 워커가 성적부진으로 해고되고 부치 카터가 부임하면서 맥그레이디도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부치 카터는 맥그레이디의 성장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왔고, 맥그레이디를 위해 자유투 코치와 인터뷰 카운슬러까지 붙여줄 정도였으니. 티맥 역시 부치 카터를 삼촌이라고 부르면서 많이 따랐다고 한다. 물론 부치 카터도 성적부진으로 해고되면서 둘의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렇게 맥그레이디는 조금씩 성장해 갔고, 99-00시즌 종료 2달전에는 붙박이 주전으로서 활약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3경기동안 두자리 수 득점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다. 하지만 당시 토론토는 누가 뭐래도 [[빈스 카터]]의 팀이었다. 사촌인 빈스 카터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은 그는 3년간의 토론토 생활을 끝내고 올랜도 매직으로 이적한다. 맥그레이디가 토론토에서 보낸 시간은 비록 루키계약의 짧은 3시즌에 불과했지만, 카터가 들어은 98-99시즌 부터 엄청난 덩크와 하이라이트를 만들어내며 주목받는 라이징 스타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